이탈리아 럭셔리 오트 쿠튀르 브랜드 메종 발렌티노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Alessandro Michele)의 첫 번째 오트 쿠튀르 컬렉션을 공개했다. 지난 2024년 4월 발렌티노의 수장으로 부임한 미켈레는 ‘2025 오트 쿠튀르 발렌티노 베르티지누(Valentino Vertigineux)’ 컬렉션을 통해 자신만의 독창적인 비전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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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쇼는 1월 29일(현지시간) 오후 3시, 파리 중심부에 위치한 브롱냐르 궁(Palais Brongniart)에서 열렸다. 이 장소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건축물이자, 프랑스 금융 거래소로 활용되었던 공간이다. 미켈레는 이번 컬렉션을 통해 역사 속에서 깊이 다뤄지지 않았으나 문화를 창조하며, 질서를 부여하는 방법인 ‘목록(List)’의 개념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하고자 했다.
미켈레는 이탈리아의 저명한 작가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의 철학적 개념에서 영감을 받아 컬렉션을 구상했다. 에코는 목록이 가지는 소란스러움과 무절제함, 강박적인 요소가 만들어내는 특정한 감각을 ‘현기증(Vertigineux)’에 비유했으며, 이러한 개념은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목록의 본질과도 연결된다. 미켈레는 이를 패션에 접목하여, 유한하면서도 무한한, 질서를 가져오는 동시에 분산을 일으키는 이중적 성향을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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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렉션은 총 48개의 룩으로 구성되었으며, 미켈레는 각각의 룩이 서로 연결된 복수의 세계이자, 개별적으로 완성된 독립적인 목록임을 강조했다. 패션쇼 현장에는 각 룩에 대한 상세한 쇼 노트가 제공되었으며, 이 노트는 단순한 스타일 설명을 넘어, 사용된 소재, 연상되는 단어 등으로 이루어진 두꺼운 목록 형태의 기록물이었다.
미켈레는 이번 컬렉션을 통해 패션을 단순한 의상 디자인이 아닌 ‘살아있는 지도학’으로 해석했다. 그는 각각의 드레스를 단순한 오브제가 아니라 시각적이고 상징적인 기억의 흔적을 간직한 ‘의미 있는 그물망의 매듭’으로 표현했다. 즉, 단순한 디자인을 넘어 완성되지 않았기에 더욱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다양성을 제시하며, 이를 통해 현기증과도 같은 감각적 경험을 전달하고자 했다.
룩의 구성에는 메종 발렌티노의 아카이브, 문학, 예술의 역사에서 비롯된 다양한 레퍼런스가 활용되었다. 미켈레는 이러한 요소들을 단순히 차용하는 것이 아니라, 비선형적인 방식으로 끊임없이 더해지고 확장되는 형태의 디자인 접근법을 취했다. 그 결과, 장인 정신이 돋보이는 동시에 개별적인 서사가 담긴 룩들이 탄생했다.
이번 컬렉션을 통해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발렌티노의 역사적 유산을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개념적 해석을 더한 실험적인 접근을 시도했다. 기존 패션의 정형화된 방식에서 벗어나, 철학적 사유와 감각적 경험을 담아낸 ‘베르티지누’ 컬렉션은 패션이 단순한 옷을 넘어, 개념과 사유를 담을 수 있는 예술적 매체임을 다시 한번 입증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준문 기자 jun@newstap.co.kr
